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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라라랜드: 음악, 사랑, 선택

by cmnote 2025. 8. 11.

 

영화 라라랜드 포스트 사진

영화 라라랜드는 음악과 사랑, 그리고 인생의 선택이라는 세 축이 정교하게 맞물리는 작품입니다. 이 글은 작품의 명장면을 중심으로 음악이 감정을 어떻게 이끌고, 사랑이 어떤 형태로 변주되며, 선택이 캐릭터의 삶을 어떻게 바꾸는지 깊이 있게 재조명합니다. 장면의 의미와 상징, 연출적 장치를 함께 살펴봅니다.

음악: 재즈와 감정의 완벽한 결합

라라랜드의 음악은 배경을 채우는 장식이 아니라 서사를 전진시키는 동력이다. 오프닝 넘버 ‘Another Day of Sun’은 로스앤젤레스 고속도로 위라는 일상의 공간을 단번에 꿈의 무대로 전환하며, 이 도시에 모인 수많은 사람들의 “또 다른 하루”와 “또 다른 기회”를 합창으로 선언한다. 화사한 원색 의상, 롱테이크처럼 느껴지는 유려한 카메라 워킹, 군무가 만들어내는 집단적 리듬은 관객을 즉시 세계관 안으로 끌어당긴다. 이후 ‘Someone in the Crowd’는 무명의 배우 미아가 파티 속에서 기회를 찾는 감정의 진폭을 경쾌한 템포로 풀어내고, 화장실의 거울과 반짝이는 드레스, 다이 컷 편집은 “반짝임”이 곧 가능성과 유혹임을 시각화한다. 영화의 정서적 심장인 ‘City of Stars’는 단순한 진행과 반복되는 피아노 리프, 여백을 많이 둔 멜로디로 공기감과 쓸쓸함을 동시에 남긴다. 이 곡은 두 주인공의 동상이몽을 이어주는 다리이자, 서로를 응시하는 눈빛의 리듬을 음악으로 번역한 장치다. 재즈 클럽 신에서 세바스찬의 즉흥 연주는 캐릭터의 신념을, 상업 밴드 공연에서는 타협의 무게를 소리로 체현한다. 후반부 ‘에필로그’ 모음곡은 몽타주와 오케스트레이션을 결합해 “가능했을지도 모르는 삶”을 하나의 교향시처럼 펼친다. 화성의 전조와 템포 변화는 시간의 회귀와 가정법을 암시하고, 테마들이 서로 교차하며 재등장하는 구조는 두 사람이 함께 걸었으나 결국 다른 길을 택해야 했던 궤적을 음악적으로 증명한다. 즉, 라라랜드에서 음악은 감정을 설명하지 않고 감정 그 자체로 존재하며, 인물의 욕망과 후회를 악상기호처럼 표기한다. 관객은 가사를 따라 부르지 않아도 선율의 호흡과 박자의 간격을 통해 장면의 온도를 정확히 감지하게 된다.

사랑: 현실과 이상 사이의 감정선

라라랜드의 사랑은 “함께 끝까지 가는가”가 아니라 “서로를 어떻게 빛나게 했는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미아와 세바스찬은 만남의 순간부터 서로의 결핍을 비춘다. 미아는 실패와 거절로 마모된 자존감을, 세바스찬은 잃어버린 순수한 신념을 상대에게서 보며 조금씩 회복한다. 두 사람이 천문대에서 별빛을 따라 춤을 시작하는 장면은 현실의 중력을 벗어나는 판타지이자, 감정이 극점에 달했을 때만 가능한 무중력의 비유다. 그러나 영화는 곧 현실의 중력을 다시 호출한다. 장거리, 생계, 커리어, 시간표라는 구체적 문제가 관계를 갉아먹는다. 사랑의 성장과 개인의 성취가 늘 같은 리듬으로 박자를 맞추지 않는다는 사실을 두 사람은 늦게 깨닫는다. 식탁에서의 갈등 장면은 어두운 조명과 좁아지는 앵글, 말끝마다 늘어나는 침묵으로 “같은 공간에 있으나 서로 다른 시간대에 있는” 상태를 시각화한다. 그럼에도 이들의 사랑은 소모적이지 않다. 미아의 1인극 도전, 오디션에서의 독백-노래, 세바스찬의 클럽 오픈 등 각자의 전환점에 상대의 발화가 배어 있다. 마지막에 서로 마주 보는 미소는 “현재의 우리”에게 보내는 축복이자 “그때의 우리”에게 건네는 인사다. 해피엔딩과 새드엔딩의 이분법을 유예한 채, 영화는 사랑을 “서로의 가능성을 열어준 시간”으로 정의한다. 그래서 이별이 상실만을 뜻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랑이 제 역할을 완수했기에 떠나보낼 수 있었음을, 끝내 함께 가지 못했어도 서로의 성공 안에 타인의 손길이 조용히 남아 있음을, 영화는 절제된 시선과 음악의 여운으로 증명한다.

선택: 꿈과 사랑 사이에서

라라랜드의 서사는 결국 선택의 연속으로 짜인다. 세바스찬은 전통 재즈의 순도를 지키려는 신념과 생계를 보장하는 상업 밴드 사이에서 갈라진다. 그는 잠시 타협을 택하지만, 무대 위 화려한 조명 아래에서조차 자신이 연주하는 소리가 자신을 배반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미아 역시 수차례의 오디션 낙방 끝에 자신이 직접 쓴 이야기를 무대에 올리는 선택을 한다. 누군가의 기준에 맞추기보다 내 목소리를 먼저 만들겠다는 결단이다. 이 선택들은 관계에도 파문을 낳는다. 일정과 도시, 기회의 타이밍이 어긋나며 두 사람은 각자의 길과 서로의 시간을 모두 지키기 어렵다는 사실과 마주한다. 영화가 빼어난 대목은 “다르게 선택했더라면?”을 에필로그 시퀀스로 구체화한다는 점이다. 카메라는 과거를 재배열하고, 음악은 테마를 변주해 ‘만약’을 하나의 완성된 삶처럼 들려준다. 관객은 순간 흔들리지만, 곧 현재의 표정에서 답을 본다. 선택의 가치는 결과의 행복지수만으로 측정되지 않는다. 그 선택이 나를 어디로 이끌었는지,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놓아주었는지, 그리고 그 대가를 스스로 인정할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 라라랜드는 꿈과 사랑을 대립항으로만 두지 않는다. 때로는 꿈이 사랑을 확장하고, 때로는 사랑이 꿈을 정련한다. 다만 두 궤도가 끝내 하나로 합쳐지지 않을 때, 우리가 할 일은 상대를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시간을 우리 안에 보관하는 일임을 영화는 말한다. 그러므로 라라랜드의 선택은 잔혹한 심판이 아니라 성숙의 통과의례다. “지금 여기의 나”를 만들기 위해 지나온 길에 의미를 부여하는 행위, 그것이 이 영화가 권하는 선택의 윤리다.

결론

라라랜드는 음악이 감정의 언어가 되고, 사랑이 성장을 돕는 동반자이며, 선택이 삶의 문장을 완성하는 쉼표임을 보여준다. 해피엔딩이 아니어도 좋은 이유를 음악과 장면, 침묵으로 설득하는 작품이다. 다시 볼수록 다른 나를 비추는 거울이 되는 영화, 오늘 당신의 선택으로 한 번 더 재생해 보자